본문 바로가기
어학공부(일본어,베트남어)

호치민의생애(2) 베트남공산당과 독립투쟁

by 변화마스터 2018. 6. 8.
반응형

안녕하세요

요시요시입니다.


호치민의생애 두번째인데요.

저번까지는 유년시절부터 청년기 그리고 공산당활동 초기까지 서술해보았어요.

이번에는 베트남공산당부터 인도차이나전쟁 그리고 베트남독립입니다.


1930년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은 호치민은 태국에서 베트남독립을 위해 힘을 씁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으고 공산주의 조직도 하나로 통합하여 베트남공산당을 창설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반프랑스, 반식민지 운동을 주도해 프랑스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여러 해 동안 망명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때 독일이 일본과 손을 잡고 프랑스를 점령하자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베트남공산당과 함께

독립운동단체 베트민을 만드는데 이때가 베트남을 떠난지 거의 30년이 된 시점이라고 하네요.

고국에 돌아왔지만 망명상태라 전면에 나설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팍보라는 동굴을 본거지로 하여 숨어지내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힘을 모은 호치민은 프랑스와 싸우기 위해 중국의 장제스정부의 도움을 받고자 했으나 오히려 감옥에 갇히는데요.

감옥에서 옥중일기를 쓰며 독립운동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 지배의 응우옌왕조가 무너지고 호치민은 9월2일 바딘광장에서

베트남독립을 위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주석이 됩니다.



하지만 베트남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때문에 호치민은 베트남독립을 위해서 계속 싸워야했는데요.

이를 인도차이나전쟁이라고 합니다.

프랑스는 베트남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응우옌왕조를 복권시키고 계속 놔두지 않았는데

결국 호치민의 부하장군 보응우옌지압 장군이 이끈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에 승리하여 상황이 바뀌고

제네바회의에서 프랑스의 베트남철수는 결정되었지만

호치민이 주장한 베트남즉시 독립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열강들은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나눕니다.

이 후 통킹만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게 베트남 전쟁의 시작입니다.


호치민독립사를 보면 마치 한국의 독립운동가와 비슷한 면이 굉장히 많은데요.

어떻게 보면 비슷하게 강대국의 영향을 받아온 우리나라역사측면에서

많은 공감을 받는 측면도 많네요.

어쨌든 호치민은 베트남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김구선생님 같은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역사를 정확히 모르고 베트남에서 실수를 하는일없도록 해야겠어요.

그리고 베트남사람들 역시 자존감이 높은 민족이라 

이를 존중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여행서적에 나온 이야기인데 내용이 참 참신하네요.^^


해당내용은 베트남100배즐기기(RHK) 내용을 참고했음을 다시한번 밝힙니다.

반응형